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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미친놈이라고 기록된 신하

by beautifulkorean 2024. 9. 29.

목차

    조선왕조실록에 미친놈이라고 기록된 신하

    바로 "박문수"다.

    우리는 박문수를 똑똑하고 정의롭고 반듯한 '암행어사'로 알고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박문수의 모습을 '광패(狂悖)', '광인(狂人)' 즉 '미친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 박문수가 왜 '미친놈'으로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자.

    수찬 한현모(韓顯謨)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이 대신(臺臣)들의 피사(避辭)를 살펴보건대, 대개 박문수(朴文秀)가 연석(筵 席)에서 공척한 데서 말미암았는데, 이른바 '노예(奴隷)'라고 운운한 것은 놀랍고 패려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저 훈재(勳宰)가 전후의 연석에서 주달한 것 은 광란(狂亂)한 잠꼬대에다가 속되고 패려스러운 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존엄 한 자리에서는 저절로 근신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 어찌하여 박문 수는 유독 이런 본성이 없단 말입니까? 속으로는 궤휼(詭譎)한 마음을 품고 겉으 로는 우직함을 가탁하고 있으니, 무거운 견책을 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그대의 상소에 청한 것은 너무 지나침을 면할 수 없다."
하였다. 이에 앞서 박문수가 대신들 가운데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논척(論 斥)하면서 '당로자(當路者)를 아첨해 섬기는 데는 마치 노예와 같다.'고까지 말한 적 이 있었다. 이리하여 대신인 이주진(李周鎭)·민정(閔珽)·유건기(兪健基) 등이 서 로 잇따라 피험했기 때문에 한현모의 말이 이러했던 것이다. 그뒤 지평 유최기(兪最 基)도 상소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아! 저 훈재(勳宰)가 멋대로 분노를 내뿜어 진신(神)들을 능멸하고 짓밟고 있 습니다. 자신이 동방삭(東方朔)도 아니면서 해학(諧謔)하는 기교를 부리고 우맹 (優孟)의 태도를 모방하여 광변(狂辯)을 가탁하여 기만하는 술책을 마구 부리고 있으니, 보고 듣는 사람으로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의당 엄한 질책을 가하 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경계할 줄 알게 하소서."
하였다. 박문수가 상소하여 대변(對辨)하기를,
"신은 기(氣)가 거칠고 말이 거칠어서 법도 속에 들어가지 못하나 지난번 연석(筵 席)에서의 실언(失言)은 사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남에서 사람이 사람을 구워 먹은 변고로 인하여 성상께서 잠을 편안히 못주무시고 깊은 밤 침전(寢殿)에서 대 신(大臣)을 불러 접견하시고는 어선(御膳)을 감손시키고 방공(方貢)을 정지시켰 는데도, 자칭 유신(儒臣)이라 하면서 높은 자세로 금직(禁直)하되 코를 골며 양 (羊)처럼 잠만 잘 뿐 끝내 구대(求對)하지 않았고, 스스로 간신(諫臣)이라 이름하 는 사람은 사실(私室)에 누운 채 굶주린 까마귀처럼 입을 다물고 있되 또한 대각 (臺閣)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이 과연 이로 인해 통렬히 공척하다 보니 결국 실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지금 경(卿)의 소사(疏辭)도 또한 부드러운 면이 부족하다. 사기(辭氣)를 허비하 는 것이 경의 병통인 것이다."
하였다

    한현모: 박문수가 "야 이 노예같은 새끼들아" 라는데, 이게 조정에서 나올 말입니까? 징계해야 합니다.

    영조: 말이 좀 심했다.

    박문수: 제가 좀 미친놈처럼 화냈긴 한데, 저놈들이 신하라면서 말 한마디도 못한 채 입 다물고 있지 않습니까.

    영조: 또 또 성질 못죽이는거 봐라. 너 그거 병이다.

    우의정 김흥경(金興慶)이,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가 언성(言聲)을 높이고 임 금의 얼굴을 쳐다보았으니 조정의 위의(威儀)가 엄숙하지 못하다 하여 추고(推考)하 기를 청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고사(故事)를 보면 경연석(經筵席)에서 대신(大臣)은 꿇어앉고 재신(宰臣)은 손 을 잡고 반만 구부리게 되어 있지, 일찍이 부복(俯伏)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요즈 음 조정의 신하들이 겁을 먹고 모두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립니다. 임금과 신 하는 아비와 자식 같은 것인데,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본다고 하여 도리어 무슨 손상이 되겠습니까?" 하였다. 승지가 대신(大臣)의 추고 요청으로 인해 이렇 게 변명까지 하니, 더욱 조정의 체통을 잃은 것이라며 또다시 추고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박문수: 전하가 무서우니까 신하들이 전부 겁먹고 납작 엎드려있잖아요!

    왕이랑 신하는 아빠랑 아들 사이인데

    아들이 아빠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고 별 일 있습니까?

    (참고로 이거 징계위원회 열자 말자 하는 상황에서 한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말이 좀 거친 신하 정도로만 보인다.

    그런데

    하니, 임금이 갑술년의 예에 따라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박문수가 재이(災異)로 인해 진계(陳戒)하기를,
"지금에 교화(敎化)가 행해지고 있는지요? 법도(法度)가 세워져 있는지요? 인재 (人才)가 다 수용(收用)되고 있는지요? 사대부(士大夫)들이 염치(廉恥)가 있는지 요? 생민(生民)이 곤궁하고 재용(財用)이 고갈(枯竭)되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범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경우가 있으며 아들이 부모를 죽이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교화가 행하여지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범한 자도 권세가 있으면 모면하고 권세가 없으면 모면하지 못하니, 이는 법도가 세워 지지 못한 것입니다. 등용된 모든 신하가 경망스럽고 약삭빠르며 진단 무리가 아 니면, 곧 미련스럽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구차하게 미봉하여 향기 나는 풀과 냄 새 나는 풀이 한 그릇에 있게 되었습니다. 옛날 이탁(李鐸)이 대신을 논하여 이튿 날 곧 이조 판서에 제수되었는데 지금은 일시의 추고(推考)로 절교(絶交)에 이르 며, 옛날에는 명사(名士)가 걸군(郡)한다는 말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두운 밤에 애걸하고 다니니, 사대부의 염치가 없는 것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성상께서 깊 고 후한 덕이 있어 견감(蠲減)의 영이 혹은 목전에 미치더라도 먼 곳의 백성은 위 에 알릴 길이 없어 민생의 곤궁함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용도(用道)는 지출은 있 고 수입은 없는데다 잡된 비용이 너무나 번다하므로 부고(府庫)가 바닥이 나 당당 한 천승(千乘)의 나라가 추위에 떠는 걸아(乞兒)의 꼴이 되었으니, 재정의 핍절(乏 絶)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3백 년 종사(宗社)가 오늘에 이르러 여지 없이 무너지 게 되었으니 후세에서 오늘날을 보고 신 등을 어떻게 생각하겠으며, 전하께서는 또한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견이 있는 못 신하들이 모두 집에서는 근심하면 서도 감히 조정에서는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데도 집이 어찌 망하지 않 으며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크게 경동(警動)하고 크 게 진작하시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오늘의 올리는 말에 유의하시겠다고 분부하시더 라도 내일이면 행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말한 것이 모두 절실하다. 유념하겠다는 분부는 이제부터 하지 않을 것이다. 진달 한 폐단은 모구 과인(寡人)에게서 연유된 것이다."
하였다

    박문수: 교화도 없고, 법도도 없고, 인재도 안 생기고, 사대부가 염치도 없고, 민생은 망한 데다가, 지금 재난까지 일어나는 이유가 뭐 때문이겠습니까?

    잘 나가던 우리나라가 빌어먹는 거지새끼 꼴이 나게 생겼는데 3백년 왕조가 여기서 끝나려나 봅니다.

    유념하겠다고 한마디 말해봤자 전하께서 정신 바짝 안 차리면 내일이면 또 그대로이지 않겠습니까?

    영조: 그래 유념한다는 소리 그만할게. 다 내잘못이다 시발.

    예조참판(禮曹參判) 박문수(朴文秀)가 상소(上)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臣)은 본래 어리석고 광포하여 걸핏하면 문득 제멋대로 행동하였는데, 다만 천지(天地)의 함용(容)을 입어 아직까지 성명(性命)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음에 품은 것은 반드시 진달했었습니다. 지난달 대신 (大臣)들이 경연에서 아릴 적에 신이 감히 잇따라 진달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미세한 입에 불과하였으니, 어찌 성례(聖)를 번거롭게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신의 말이 때마침 성충(聖表)이 격뇌(激惱)한 때에 나왔으므로 천위(天威)가 진첩 (盡疊)하고 성교(聖敎)가 준절(峻载)하였으니, 인신(臣)으로서 차마 들을 수 없 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그때 다시 한 마디도 친달할 수 없었기에 두려워 떨며 둘러 넜으니, 이는 그 죄가 만번 죽어도 스스로 속(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금 이후로 설령 지나친 행동이 이보다 더 무거운 경우가 있더라도 신(臣)과 다른 사람을 말할 것 없이 전하를 위하여 범안(3)하며 충성을 다할 자가 있겠습니까? 알지 못하 겠습니다만, 오늘날 상하上下)의 거조와 기상(氣象)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 니까? 아! 십여 년 동안 전하의 쌓여온 상처(傷處)는 바로 신 등이 지극히 아파하는 것입니다. 말이 이런 지경에 이르니 군하(群下)의 마음이 슬프기를 기약하지 않아 도 저절로 슬퍼지며, 군하의 기(氣)가 저상(沮喪)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저상됩니다. 말할 만한 일이 있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다룰 만한 일이 있어도 감 하 다투지 못하니, 아! 슬픔니다.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전하의 지기(氣)의 강대(强大)함이 이로 말미암아 쇠약해졌으며, 학문에 대하여 힘썼던 것이 이로 말 미암아 퇴보하였습니다. 시조(指)하는 사이에는 옛날의 영발(英發)을 회복하지 못하고, 총위(從違)할 때에는 전날의 음용(雍容)람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의 신하들이 숨겨진 근심이 없지 않으나 감히 어기지 못한 채 오직 봉송(奉承)하기 만을 일삼는 것은 실로 전하의 심기(氣)가 갈수록 더욱더 격발되고 전하의 거조 (舉措)가 더욱 그르쳐질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전(殿)에 오르면 우물쭈물하다가 물러나 위축되지 않는 이가 없고, 전에서 내려오면 근심하고 한탄하여 급박함을 걱정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저 시방(四方)의 모르는 자들이 만약 가만히 의논하 기를, '우리 임금이 매번 방촌(方寸)이 상했다는 하교로써 군하(群下)를 꺾고 굴복 시키는 하나의 자료로 삼았다.'고 한다면 성덕(德)에 누가 됨이 어떠하겠습니 까? 또 신이 더욱 천지(天地)에 유감스러움이 있으니, 전하게서 평일(平日)에 스 스로를 반성(反省)함이 어떠하셨습니까? 비록 크게 견디기 어려운 지경과 지극히 억누르기 어려운 슬픔도 마땅히 이치로써 이겨내어 확연(然)히 막힘이 없어야 단지 전하께서 입지(立志)가 견고하지 못하셔서 짧기(血氣)의 누로 인해 아침에 수가 없거니와 한담(漢唐)의 중주(中主)에게 또한 발돋음해도 미치기 어렵습니 다. 앞이 이에 미치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 칠정(七情) 가운데 오 직 노여움이 억제하기 어렵고 오직 슬픔이 마음을 상하기 쉽게 합니다. 노여움으 로 남에게 노여움을 옮기고 슬픔으로 남에게 그 슬픔을 옮기는 것은 오히려 성인 (聖人)이 자신을 이기고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물며 전하게서는 노 여움을 가지고 남에게 슬픔으로 옮기고 슬픔을 가지고 남에게 노여움으로 옮기니, 화명함을 잃고 조화로움을 어긋나게 함이 이보다 더 심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심 신(心身)의 병이 되고 근본에 누가 됨이 다시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비록 성상(聖 上)의 자질(資質)이 밝고 지혜로워 간()하기 전에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병의 근 원은 그대로 방촌(方寸) 사이에 숨어 있다가 혹 일이 있으면 촉발되고 물욕에 따라 얽히게 되어 장차 전날처럼 다시 발작(作)할 것입니다. 이런 병을 제거하지 못하 연말류(末流)의 허다한 병패(病敗)는 치료하려 해도 방법이 없어 반복되다 깊은 고집이 되어 끝내는 어찌해야 할지 그 바탕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삼가 원하 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깊이 성찰(省察)하시어 먼저 대체(大體)를 세우시되, 다만 한개의 천리(天理)를 준칙(準則)으로 삼으소서, 일에 비록 크게 상심(傷心)되고, 크게 감촉(感)되며, 크게 격발(激發)하고 크게 번뇌(煩惱)함이 있더라도 탈연 (脫然)히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구하고 천리(天理)에 절정(質正)하여 진실로 털끝만큼도 겸연(然)함이 없게 된다면 극치(克治)는 칼로 두 조각으로 잘라 버 리듯이 될 것이고, 해발(解說)은 더러운 냄새 피하듯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 여 환히 톱달(洞達)해 다시 막힘이 없게 되면 손상된 감정과 격뇌(激惱)의 실마리 가 봄눈이 햇볕을 받은 것보다 더 빨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뒤에는 사물이 다가 와도 순응(應)하게 되어 넓디넓음이 여지(餘地)가 있고 기상(氣象)은 관대해져 서 사랑(辭令)이 화평해지며, 거즈(舉措)가 정당(精當)하여 인심(心)이 즐겨 복 종하게 될 것입니다. 상순(祥順)·화대(和泰)한 기운이 온 마음에 가득 차서 천지 (天地)에 도달하게 될 것이니, 성궁(聖)의 안길(安吉)함이 극에 달하게 될 것이 며, 국가의 평치(平治)가 반드시 이룩될 것입니다. 종사(宗社)의 억만년 끝이 없는
하는데, 다만 눈앞의 정리(情理)에 이끌려 이에 무익하게 감정을 상할 뿐입니다.
후회하고는 저녁에 또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 요순(舜)의 다스림은 다시 바릴
기쁨이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비답을 내려 가납(嘉納)하였다.

    박문수: 제가 미친새끼라서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을 대충이나마 하는데

    신하들 말 한마디 마다 까칠하게 트집 잡으니까 다들 무서워서 말도 못하잖습니까.

    전하가 똑똑한 건 알겠는데, 아침에 반성한다고 말하고선 저녁에 또 헛소리하고 맨날 화내는데

    지금은 별일 없어도 나중에 가면 또 발작 증세 나올 게 뻔합니다.

    그러면 또 남들한테 화풀이하고 악순환이잖아요.

    지금 요순시대는 바랄 수도 없고 까치발 들어봐야 한나라 당나라 시절 중간 수준 황제랑 비교될까 말까입니다.

    제발 성질 좀 죽이세요.

    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금일의 폐단은 재상이 사의(私意)를 쓰지 않아야 옳은데, 심지어 자질구레한 선 천(宣薦)까지 재상이 주천(主薦)하는 자를 불러 단단히 청촉(請囑)합니다. 이런 일이 한 번뿐이 아니니 기강(紀綱)이 어떻게 서겠습니까? 다스리는 도(道)란 요행 (僥倖)을 억제한 뒤에야 백성의 뜻을 정할 수 있고, 백성의 뜻이 정해진 뒤에야 기 강이 설 수 있으며, 기강이 세워진 뒤에 온갖 일이 행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강 절(邵康節)의 시에 '당기기는 천균(千勻)의 쇠뇌처럼 하고, 갈기는 마땅히 쇠를 백 번 제련하듯 한다' 하였으니,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 입니다. 옛날의 재상은 만약 시변(時變)을 당했을 경우 들어가 임금에게 고하고 계 구(戒懼)·수성(修省)하며 재앙을 그치게 할 방도를 강구(講求)하였는데, 지금은 역변(逆變)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심지어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변고까지 있으 나, 조정에서는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을 모르며 투미(蝓靡)는 날로 심해지고 있습 니다. 인심이 이와 같고 기강이 이와 같으며 백성은 궁핍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하 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3백년 종사(宗社)가 어찌 전하 때에 망하려는 조짐이 아니겠습니까? 모름지기 크게 분발하고 크게 진작(振作)한 연후에야 국사(國事) 를 다스릴 수 있고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전하께서는 영명(英明)함 이 너무 지나치나 학식이 부족하여 작은 일은 살피지만 혹 대체(大體)를 잃기도 하 십니다. 삼가 원하건대 긴요하지 않은 문서는 제거해 없애고 긴절(緊切)한 공부 (工夫)를 하시며, 전날의 투타염희(逾惰恬嬉)하던 것을 버리신다면 국가를 부지 (扶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소회(所懷)는 낮이 지나고 밤을 새워도 다 말씀드 릴 수 없으니, 어리석은 충정이 답답하게 맺힌 나머지 거의 광기(狂氣)를 발할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영성군의 이와 같은 기습(氣習)을 사람들이 거칠다고 하지만 나는 당직하다고 생 각한다."
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비록 옹주(翁主)의 제택(第宅)으로 말씀드리더라도 거처(居處)할 만하면 족할 것이니, 어찌 장대(張大)하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득한 큰 들과 척박한 산전 (山田)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절수(折受)하였으니, 부마(駙馬)의 위력으로 처음에 는 수습(收拾)할 수 있겠지만, 그 자손들은 결코 추심(推尋)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갓 목전(目前)의 민폐를 끼치는 것일 뿐이니, 한도(限度)를 정해 비옥한 땅을 사 주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신도 또한 일찍이 자식을 낳았으나 훈봉 (勳封)을 얻자 갑자기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서명균(徐明均)이 복이 많은 것은 선 세(先世)의 검약(儉約)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조물주의 이치는 본래 이와 같은 것 입니다. 무릇 부마의 전택(田宅) 등에 관계된 일은 한결같이 검약을 따라서 많은 복을 받게 하소서.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성색(聲色)·토목(土木)·사치(奢 侈)의 일을 일체 물리쳐 버리셨으나, 사사롭지 않을 수 없고 욕심 내지 않을 수 없 는 것이 단지 부마의 영산(營産) 한 가지 일에 있으니, 이 간절한 일에 대해서도 단 연코 잘라 버린다면 그 나머지 국사(國事)는 이에 절반을 넘을 것입니다."

    박문수: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까 전하 때에 300년 종사가 망하려나 봅니다.

    지금 머리만 믿고 공부도 안하니까 자꾸 숲을 안 보고, 사소한 것만 꼬투리 잡으려 하는데 정신차리세요.

    제가 전하랑 나라 생각만 하면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영조: 사람들이 너한테 거칠다고 말하지만, 난 너가 강직한 거라고 믿는다. (적당히 해라 십새끼야!)

    박문수: 강직하다니까 한마디 더하는데, 따님한테 적당히 퍼주세요.

    사치 줄인다고 말하더니 딸한테는 마구 퍼주시던데요?

    진주 정사(陳奏正使) 서명균(徐命均), 부사(副使) 박문수(朴文秀), 서장관(書狀官) 황재(黃梓)가 대궐에 나아가 절하고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였다. 서명균이 나 아가 말하기를,
“신(臣)이 환조(還朝)하기 이전에 미쳐서 종사(螽斯)의 경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의 크게 축원(祝願)하는 바입니다."
하고, 이어서 사자(嗣子)를 구하는 방도를 넓힐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믿는 바는 오직 하늘일 뿐이다."
하였다. 박문수(朴文秀)가 말하기를,
“인사(人事)를 닦음이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없는데도 하늘이 권고(眷顧)하지 않 는다면 진실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인사(人事)에 대해서 과연 다 하였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大臣)이 말한 바 '사자(嗣子)를 구하 는 방도를 넓히라.'는 설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나 후사(後嗣)를 구하는 방도도 또한 일단(一端)이 아닙니다. 보색(保嗇)하는 것이 첫째이고, 광구(廣求)하는 것 이 둘째이며, 홀형 보민(恤刑保民)하여 선경(善慶)을 쌓는 것이 세째입니다. 그런 데 전하께서는 이미 인사를 닦지도 않으시고 단지 하늘에만 돌리시민, 신은 감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고, 이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이제 국경(國境)을 나감에 당해서 어리석은 마음이 더욱 감격합니다. 대저 독서(讀書)를 하는 것은 장차 체험(體驗)하여 힘써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바야흐로 《시전(詩傳)》을 강(講)하시는데, 관저장(關雎章)이 첫머리 에 있습니다. 성덕(聖德)이 이미 수장(首章)에 부족함이 있다면 비록 날마다 10편 씩을 강론하더라도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하께서는 위로는 동조(東 朝)를 받들고 아래로는 옹주(翁主)가 있는데 궁위(宮闇)의 사이에 자못 화평(和 平)한 기상이 없으니, 전하의 제가(齊家)하심이 이와 같은데 오히려 길상(吉祥)의 일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영성(靈城)을 사람들이 광인(狂人)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홀로 광인이라고 말하 지 않는다. 오늘날 연석(筵席)에서 영성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있 겠는가? 일찍이 풍원군(豐原君)에게 이미 나의 뜻을 하유(下諭)하였는데, 풍원군 은 나를 의심함이 너무 지나쳤다. 영성은 직간(直諫)을 하니,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였다. 서명균 등이 장차 물러가려 하자, 각각 사온(賜醞)할 것을 명하였다.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

    박문수가 포함된 청나라 파견단이 마중 나온 상태였다.

     

    사신단장 서명균: 우리가 돌아올 때 즈음엔 아들 낳아서 대를 이으시길 바랍니다.

     

    영조: 뭐 그거야 하늘이 정해주시는 바지.

     

    박문수: (급발진) 근데 사람이 사람의 일을 다해야 하늘이 대통을 내려주는 거잖아요.

    전하가 지금 사람의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몸을 보호하고 아끼고, 백성들도 보호하고 기타 등등 선정을 베풀어야 하는데

    헛짓거리 하시면서 왜 아들은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고 말만 합니까?

    시발 눈물 나네, 저 지금 국경 밖으로 나가는데 진짜 걱정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가르쳐 줘 봤자 뭐해요.

    집안 꼬라지가 위에 대비부터 밑에 옹주까지 개판인데 대를 이을 아들이 나오겠습니까?

     

    영조: 다른 놈들은 니가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니가 미친놈까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미친새끼가 진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박문수는 영조의 비호를 받았고

    그에 힘입은 박문수는 더욱 거세게 광인 모드로 날뛰었다.

    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신이 비록 학문은 없으나, 말한 것을 간책(簡冊)에 쓰더라도 옛사람에게 부끄러 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경의 기질(氣質)은 옛사람과 우연히 일치된다."
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신은 춘방(春坊)에 있을 때부터 전하를 섬겼는데, 일찍이 일심으로 대조(大朝)· 소조(小朝)를 섬기는 말씀을 우러러 진달했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데도 일심이 있을 뿐이니, 참으로 조금만 미진하더라도 충심(忠心)이 아닙니다. 신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10년 사이에 일찍이 권귀(權貴)의 집 문앞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벼슬이 조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경을 알고 있는데, 경이 아니면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박문수: 제가 지금 말한 내용이 책으로 써도 옛 성인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좋은 겁니다.

    영조: (빵터짐) 그래 옛날에도 너 같은 놈 있었겠지.

    박문수: 제가 전하를 오랫동안 잘 모셨고, 권력을 탐하지 않아서 벼슬이 조금도 안 올랐습니다. 잘했죠?

    영조: ㅋㅋㅋ 니가 아니면 누가 이따위 소리 하겠냐?

    출처 : 조선왕조실록에 미친놈이라고 기록된 신하 - 인벤

    영조도 소소하게 복수함. 박문수가 외직 나가있을 때...
박문수 : 전하. 여기 수군 상태 개판입니다. 전함 만들게 예산 좀 빨 리 편성해서 집행해 주십쇼.
영조 : 예산? 문수야. 이순신은 그 땅끝에서 자력으로 군대 키우 고 배 만들고 피난민들 구휼하고 조정에 종이까지 바쳤는데 넌 똑 똑힌 애가 배 만들 돈 없다고 조정에 아쉬운 소리부터 하면 어떡하 냐?
박문수: 아니 전 충무공이 아니잖슴;;
    노빠꾸 상남자
24-09-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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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시절 포항 영일만에 가재 도구와 관들이 밀려와 해
변에 쌓인 것을 보고 수해 사태를 직감
책임은 자기가 진다며 절차 무시하고 즉각 구호곡들을 미리 거
둬 배편으로 보내 함경도의 백성들을 구함
물자가 부족한 거 같아 대신들의 재물을 거두어 나라에서 돕자. 라
고 상소를 절차 무시하고 바로 영조한테 냅다 갈겨버림 노론이 저놈을 죽여야 나라가 산다고 왁왁 핍박하는 걸 영조 가 카바쳐줌
    유능한 것도 있는데
노론이 주류였는데 소론 아이콘인 박문수가 버텨줘야 최소한 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무시 못함
당시 소론이라고 해봐야 2~3 사람 밖에 살아남지 못하고 나머
지는 탕평파로 돌아섰거나 노론 손에 다 죽었음 농담 아니고 진 짜 살해 당함
그 와중에 떳떳하게 소론으로 살아남은 거임 박문수가 죽일테 면 죽여보시지 하고 절대 탕평파로 돌아서지 않음 노빠꾸 상남 자 직진남임
    근대 박문수가 틀린말이 없는게... 영조가 그렇게 신하들 꼬투리잡 는걸 즐겨했다고함.
실제로 머리는 더럽게 좋아서..한 20년전쯤 신입시절 실수한걸 하 나 하나 다 기억하고는
툭하면 니가 몇년전에 그 따위로한게 지금까지도 이러는구나.. 뭐 이딴식으로 신하들을 갈궜다고.. 말 하나 하나를 잊는법이 없어 서.. 니가 몇년 언제쯤에는 이런말 했었는데.. 왜 말이 다르냐? 이딴 식으로 갈궈대니 신하들이 영조 눈도 마주치기 싫어했다고 ㅋㅋ ㅋ
박문수같은 똘아이나 되니 저렇게 하고 싶은말 다 퍼붙는거지 ㅋ ㅋ
그리고 저기서 공주 얘기 나온게 화완옹주인데.. 영조가 머리는 좋 은데 진짜 편협한 인물인게.. 화완옹주를 그렇게 편애를 하면서 사 치를 해도 돈을 퍼줬던..
반면에 같은 딸인 화협옹주는 얼굴만봐도 짜증을 내고 안보려 고 하고;; 둘다 똑같은 자기 딸인데.. 뭐든 사소한걸 절대 잊지 않
고 자기 눈밖에 한번 나면 절대 다시 안돌아보고..
자기 눈에 든 사람은 또 절대 안쳐내는 성격인듯..
하긴 저런 성격이니 자기 아들마저 뒤주에 가둬 죽인거기도 하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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