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강도 개빡셌던 조선시대 왕의 하루 일과표.jpg
왕이 되고 나서도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경연(經筵)은 왕의 필수의무였다.
경연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씩 열렸다.
경연을 게을리했다간 왕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실제로 연산군이 왕좌에서 밀려난 데는 경연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몫을 했다.
임금의 업무 강도 또한 가볍지 않았다.
왕의 일과는 회의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대규모 직원조회인 조참(朝參)과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 국정보고 격인 윤대(輪對), 국무회의와 비슷한 차대(次對)에 이르기까지, 왕의 일과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조선 시대 임금의 역할은 끝이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대법관, 국회의장의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꼴이다.
게다가 그는 ‘최고 제사장’이기도 했다. 임금은 크고 작은 제사도 떠받들어야 했다.
종묘에서 치러지는 제사만 1년에 다섯 번이었다.
여기다 사직단, 영녕전(永寧殿) 제사까지, 임금이 챙겨야 할 자리는 한없이 많았다.
세자 때는 시험 부담도 상당했나 보다.
왕실 교육에서는 매일 수업이 끝날 때마다 쪽지시험을 보았다.
게다가, 매월 두 차례 있던 회강(會講)에서는 ‘종합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 자리에서 세자는 스승 20여명 앞에서 배운 내용을 ‘테스트’ 받았다.
먼저, 경전(經典) 구절이 적힌 대나무 쪽이 가득한 통이 놓인다.
세자는 거기서 문구 하나를 뽑아들고 읽고 뜻을 풀이해야 했다.
스승들은 성적을 적은 나무패를 쳐들었다.
흡족하면 ‘통’(通), 그런대로 내용을 채웠으면 ‘략’(略), 미흡하면 ‘조’(粗), 형편없으면 ‘불’(不)을 들었다.
‘A’, ‘B’, ‘C’, ‘F’로 점수를 매긴 셈이다.
원문 출처 : “왕 권력은 ‘핏줄’ 아닌 ‘실력’에서 나온다” - 한겨레신문
조선시대 행정 시스템은 최고통치자인 왕을 갈아넣어서 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세자시절부터 시스템에 최적화 시켜서 죽을 때 까지 근무하는 식이었습니다.
심지어 학업을 소홀히 하면 폐위사유가 되었습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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