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투표 제도와 민주주의의 병폐 모음집.zip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
유럽 연합의 일원이었던 영국은 막강한 공업, 제조업 생산력으로 EU에서 큰 입김을 발휘하는 독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섬나라이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상업, 교통이 불편했던 영국은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유럽 연합의 맹주가 되어 유럽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불편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던 영광스러운 나날들,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지낼 수 있었던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의 과거를 되찾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영국이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발달된 공업 생산력과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EU 분담금 또한 많이 내야 했기 때문에 불만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무거운 분담금 지불에 비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 누리는 이득, 돌아오는 혜택은 적다고 느낀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쌓이던 불만은 당시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EU 소속 전 국가들에게 아프리카,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대량으로 발생한 난민과 이민자들을 적극 수용하라고 꾸준히 요구하면서 더욱 커져갔습니다.
진보적이고 젊은 세대들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유럽연합의 일부인 영국에서 태어나 자라났기에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하더라도 유럽 연합의 일원으로서 EU에 잔류하기를 희망했지만, 과거 영광스러운 대영 제국 시절의 영국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저소득의 보수적인 노년층은 강경하게 EU를 탈퇴하고 싶어했습니다.
2016년 6월 23일, 결국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할 것인지에 대한 범 국민적인 국민투표를 실행하게 되었고, EU 탈퇴 17,410,742표(51.9%), EU 잔류 16,141,241표(48.1%), 총 72.2%의 투표율로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었습니다.
1973년 영국이 현대 유럽연합,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 EC)에 합류한 지 47년 만의 일로, 이로써 영국은 회원국 최초로 EU를 탈퇴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은근히 '설마 브렉시트가 이루어지겠어?'라고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영국 사회는 화산이 폭발한 것 마냥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당장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게 되면 관세혜택, 국가 간 이동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장기적으로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이 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완고한 노인네들은 너무 열심히 투표를 했고, 세계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있었던 젊은 층들은 투표에 게을렀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현재까지도 그 댓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2023년 브렉시트의 타당성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영국 언론 스카이 뉴스(Sky News)는 "영국 국민 중 단 9% 만이 브렉시트가 성공한 정책이라고 평가한다"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 결정을 여전히 지지하는 여론은 31%인데 비해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Bregret(Brexit + Regret, 브렉시트 + 리그렛, 후회) 여론은 56%에 달했습니다.
이미 모든 경제학자들의 분석에서, 브렉시트는 영국과 EU 양측 모두에게 좋지 못한 결정이라는 조사결과가 도출된 바 있지만, 이념적 감정에 휩쓸리고 투표할 시간이 넘쳐나는 늙은이들의 굳건한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브렉시트의 영향은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영국 경제는 유럽연합 탈퇴의 영향으로 경제 사정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에 화들짝 놀란 영국, 정신차렸나? 제국단위계 복원 취소
영국은 2023년 12월 27일, 영국이 만들어낸 가장 흉악한 인류사의 죄악이자 최악의 발명품으로 유명한 '황실도량형'(그 이름조차도 통일되지 못하고 다양하다. Imperial units 제국 단위, Imperial Measurement 제국 측정, Imperial standards 제국 기준 등) 일명 통칭 '야드 파운드 법'을 복귀시키려는 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려다 무려 전국민의 98.7%에 달하는 격렬한 반대에 힘입어 폐기되었습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영국은 EU 가입당시 도입한 미터, 킬로미터, 킬로그램 등의 세계 표준 단위를 사용하는 미터법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브렉시트에 따라 야드, 파운드, 온스 등의 제국단위계 도량형으로 복귀하려던 검토안을 철회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무서움을 그대로 보여준 해프닝, 파맛 첵스 사건
파맛 첵스 사건은 2004년 12월 1일 농심켈로그에서 첵스 초코 홍보를 위해 벌인 첵스초코나라 대통령 선거 이벤트로 인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켈로그 첵스초코 대통령 선거 이벤트 CF 1편 ferate2030
이 선거는 반듯한 캐릭터 기호 1번 체키와 적당히 만든 악역 캐릭터 기호 2번 차카가 가상 대결을 펼치는 경품 응모 이벤트였는데, 이벤트 내용이 인터넷 커뮤니티 웃긴 대학에 알려지면서 파맛 첵스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차카에 몰표를 주자는 여론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수많은 네티즌들은 기호 2번 차카에게 투표합니다.
그러나 농심켈로그 측은 기호 2번 차카에게 투표된 표 중 새로고침을 통한 중복투표 47,339표를 삭제하는 등 어떻게든 기호 1번 체키를 당선시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수많은 네티즌들의 몰표로 인해 인터넷 상에서는 차카가 당선되는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켈로그 첵스초코 대통령 선거 이벤트 CF 2편 ferate2030
선거 과정 상 명백한 부정선거와 주최측의 개입이 드러난 만큼 많은 네티즌들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꾸준히 농심켈로그에 항의하여 투표 조작에 대해 사과하고, 차카를 첵스초코나라 대통령으로 복귀시키며, 파맛 첵스를 출시하라는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부터 15년 6개월이 지난 2020년 6월 17일, 파맛 첵스를 출시하겠다는 농심켈로그의 공식 발표가 나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승리한다! 근 16년이 지나서야 출시된 한정판 파맛 첵스
농심켈로그는 첵스 파맛을 출시하는 광고에서 가수 태진아 씨의 '미안미안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거 개입과 부정선거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맛있는 '첵스 파맛'을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출시일이 늦어진 것에 대한 사과였습니다.
[켈로그] 첵스 신제품 시식단 모집 중! (6s) Kellogg korea
[켈로그] 첵스파맛 미안 미안해 편 (71s) Kellogg korea
2004년 파맛 첵스 부정선거 사건 이후로 16년간 지속적으로 꾸준히 파맛 첵스를 출시해달라는 민원을 받아온 농심켈로그는 오랜 연구 끝에 진짜 '먹을 만한' 파맛 첵스를 만들어왔고,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너도나도 첵스 파맛을 사서 맛보고 인증, 평가 릴레이가 이어졌지만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시리얼처럼 우유에 말아먹기에는 안 어울리고 과자나 안주삼아 먹기로는 나쁘지 않다.'
이 사건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상징되는 마케팅으로, 외신에도 소개되었습니다.
파맛 첵스 사건 : 16년에 걸친 투쟁 끝에 찾아온 (Feat. 켈로그 관계자) 아이템의 인벤토리
약 1년여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슈에 올랐던 첵스 파맛은 2021년 7월을 끝으로 단종되었습니다.
장장 17년에 걸친 파맛 첵스 사건은 결국 즐거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한국사회에 민주주의 선거제도와 투표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무거운 교훈을 주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쉽사리 선거를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것, 사람들은 언제든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떠한 방식으로든 선거에 개입하거나 투표결과를 조작해서는 안된다는 것, 최종적으로 민심을 이반한다면 어떠한 지도자도 지지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시사합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 호자 투표 사건
2020년 8월 31일, 국립부여박물관은 SNS에서 박물관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를 정하는 투표를 진행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멋지게 생긴 2번 '연꽃도깨비무늬벽돌'이나 4번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당선을 예상에 두고 고른 듯 한 픽이지만 국립부여박물관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내심 파맛 첵스 사건처럼 심술궂은 네티즌들의 몰표로 인해 1번 '호자'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미리 캐릭터화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는지, 실제 투표 결과와는 전혀 무관하게 국립부여박물관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꼴등으로 뽑힌 '호자'를 선택했습니다.
[호자일기 1화] ✨ SNS 스타가 될꺼야 🎉 국립부여박물관 Buyeo National Museum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정당하게 투표와 민주주의 선거제도로 뽑힌 '연꽃도깨비무늬벽돌'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호자'를 박물관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내세우고, 진지하게 이 유물을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서 상징화 하기 위해 '호자일기'라는 웹툰까지 기획합니다.
우리는 과연 올바른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전국민 자유 직접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이 선거제도가 얼마나 특이하고 실험적인 정치체제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때론 멍청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때론 위험한 독재자를 지도자로 뽑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왕정제라고 하면 100년도 더 지난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재도 세계 곳곳에는 왕이 통치하는 왕정제 국가, 통치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왕으로서 군림하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많이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편가치, '전 국민이 평등하다'라는 이념을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는 국가가 세계 대다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사람에게는 타고나는 신분이 있고, 그 계급에 따라 위계질서가 정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왕정제에서 벗어나 35년에 걸친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 시절을 겪은 뒤, 해방 후에야 드디어 민주주의 행정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군부 쿠데타로 인해 세번이나 정권과 지도자 선출권을 박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가진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너무나도 빨리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두려워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초월적인 권력을 부여받는 대신, 오롯이 국민을 받들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그 힘을 행사해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자신에게 권력의 칼날을 쥐여준, 정부가 섬겨야 할 대상인 국민을 향해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런 정부는 하루빨리 부수어버리고 '바르게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정부를 새롭게 선출해야 합니다.
'투표 결과'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우리가 뽑은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모두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수천년 인류사에 유례없는 독특한 새 시대의 정치 제도, '전국민 자유 직접 민주주의 선거 제도'는 그 힘을 잃고 독재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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