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다가 시부모님께 손주 교육에 대해 호통을 듣다
시댁에서 이루어진 김장.
아기는 친정에 잠시 맡긴 상태.
시어머니 : 너거 자슥은 비정상이다.
아들 & 며느리 : 네!? (이렇게 대뜸!?)
시어머니 : 애들이란 거는 예닐곱살이 되면 부모 말을 안 듣는다. 아무리 천성이 순하고 착한 아이라도, 그 나잇대가 되면 악마가 씌이고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부모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미친 짓거리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그런데, 너희 아이는 너무 순하다. 너무 지나치게 순하다. 애비 애미 말을 너무 잘 듣는다.
며느리 : 그... 그런가요... 지나치게 순한 것도 문제인 걸까요...
아들 : 아니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애가 비정상이라니요.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시아버지 : 얘야. 네가 어렸을 때, 예닐곱살 나잇대에 어땠는지 기억이 나느냐?
아들 : ...기억 납니다. 전 완전히 미친놈처럼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녔지요. 부모님 말 안 듣고, 물건 깨부수고, 과학 실험 한다고 불도 질러보고, 싸움박질 해서 코피도 터져 오고, 엉망진창 사고뭉치였지요.
시아버지 : 그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조선 팔도 모든 애새끼란 것들은 너댓살이 되면 미운 네 살, 미운 다섯 살이 되고, 예닐곱살이 되면 때려 죽이고 싶은 여섯 살, 콱 패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이다. 중학교 때 사춘기 반항의 시기가 오기 전, 미취학 유아기에 부모에게 너무 순종하고 전혀 반항을 안 하는 것은 애가 뭔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시그널이다. 일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이 애비가 가르치고 키워 온 학생만 몇 만 명이다. 단 한 놈도 예외는 없다. 너희들, 집에서 너무 아이를 얽매고 압박하며 키우는 것은 아니냐?
며느리 : (난 안 그랬는데... 난 어릴 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조용하고 순한 아이였는데...)
아들 : 딱히 혼내거나 겁을 주며 키운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시어머니 : 내가 저번에 보니까, 아이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 이것 먹어도 돼요? 아버지, 이거 해봐도 돼요? 아버지, 이건 뭐예요?" 하고 사사건건 물어보는 성향이 있더라. 아이가 너무 아빠에게 의존하고 물어보려는 경향이 있어.
시아버지 : 자식이 애비에게 존경심을 품고 가르침을 구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창 세상에 대해 직접 탐구하고 스스로 체험하며 자연의 진리를 습득해 나가야 할 나이의 아이가 모든 것을 아빠한테 질문해서 답을 구하려는 자세는 잘못된 거야. 아무리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자기가 스스로 시도를 해보고, 해봐도 안되면 그때 애비한테 물어봐 버릇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체 아이의 창의력은 어떻게 기를 셈이란 말이냐?
시어머니 :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더러운 흙이랑 개똥도 주워먹고 배 아파 보고, 친구랑 주먹다짐도 해 봐서 때리고 맞는 행위가 서로 아프고 나쁜 행위란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친구끼리 화해하고 화합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배우고, 유리컵 같은 거 깨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씨게 집어 던져서 신나게 박살도 한 번 내 보고 시원하게 혼쭐 한 번 나보고 손가락도 베여 본 다음에 '아, 유리컵 떨궈서 깨뜨리고 손가락 베이면 피가 나고 아프는구나.' 하는 걸 어릴 때 체험해 봐야지, 그런 위험성을 모른 채 그대로 크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니? 어릴 때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를 하면서 자기 관절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충격과 아픔을 느껴봐야, '아, 이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지면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지, 어릴 때 그런 체험을 해보지 못하고 크면 공포가 마비돼서 높은 곳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뛰어내릴 수 있지 않겠니?
아들 & 며느리 : ...
시아버지 : 이 애비 말을 들어라. 책을 그만 읽혀라. 질문을 멈추게 하고, 모든 질문의 답을 쉽게 들려주지 말아라. 뭐든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힘을 길러 주어라. 아이가 궁금한 것이 생기거든, 뭐든지 직접 경험해 보게 해라.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데리고 나가라. 애비 애미한테 물어보는 짓거리 그만 하게 하고, 궁금한게 있으면 직접 뛰어들어 직접 알아내는 기쁨을 맛보도록 유도해라. 너는 대대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영재 교육 사업 한다는 녀석이 자기 자식 교육을 그 따위로 해서 되겠느냐? 애가 아무리 어린 나이에 제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술술 풀고, 몇 개 외국어를 쏼라쏼라 해대고, 블랙홀의 원리 같은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술술 한다고 해도, 애는 애일 뿐이다. 네가 팔불출처럼 거기에 취해 '내 자식 교육은 잘 되어 가고 있구나' 이딴 머저리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선행학습 나부랭이는 중고등학교 가면 타고난 대가리 빨에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것이야. 중요한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즐기는 태도, 창의력 그 자체다. 창의력을 잃은 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성적을 잘 받아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쓸모가 없어! 내 말을 명심해라.
아들 : 네.
시어머니 : 아이가 뭐든지 챙겨 먹어 버릇 하도록 가르치거라. 무엇이든지 용감하게 도전하고, 똑바르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거라. 처음 보는 음식이 있으면 용기내서 입에 넣어 맛을 보게끔 하고, 맛이 있으면 그대로 씹어 삼키고, 맛이 없으면 "나 이거 맛이 없어서 못 먹겠어요!" 하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도록 자신감을 키워줘라. 애가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어딜 가나 휘둘리는 인생을 살게 된다. 학교에 가게 되면 얼마나 다양한 아이들이 있을텐데, 거기서 항상 휘둘리는 아이로 살아서는 안 될 것 아니니?
며느리 : 사실... 우리 아이는 항상 모든 모임에서 자기가 대장을 맡지 않으면 안되는 성미이긴 해요...
시어머니 : 그건 차라리 낫구나. 질질 끌려다니는 성미인 것보단 나아. 뭐든지 휘어잡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줏대가 있어야 해. 소신을 가졌으면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미가 있어야 한다.
며느리 : 그런데... 사실 저희는 반대로 아이가 너무 또래 집단에서 주도적으로 자기가 모든 모임의 대장을 맡으려 하는, 리더 기질이 너무 과한 것이 걱정되는 편이에요... 항상 자기가 룰을 정해야 하고, 자기 룰에 따르도록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하려는 성미를 가지고 있어요.
시아버지 :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때리느냐?
며느리 : 그건 아니에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다른 아이들을 때리거나 쥐어 뜯은 적은 없어요.
시아버지 : 그럼 괜찮다. 아이들은 지배하고, 지배받는 경험을 통해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사회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다. 지배하는 것과 지배받는 것.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 고용되어 노동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사업을 일으켜 사람을 고용하고 다스린다. 네 자식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지시하고 통제하여 정돈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아.
아들 : 전 나쁘다고 생각하는데요.
시아버지 : 왜 그게 나쁜 경험이라고 생각하느냐?
며느리 : (몰래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는다. '부모님 앞에서 정치 얘기 꺼내면 나중에 나한테 죽을 줄 알아요.' 눈빛 발사.)
시아버지 : 다른 사람을 한 둘이라도 부려봐야 사람들의 불만과 순종을 읽을 수 있고, 여러 사람의 복잡 다단하게 얽힌 감정을 모두 감내하고 짊어진 채 선을 지켜가며 통제할 수 있어야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경험은 좋은 경험이야. 어릴 때 우두머리 노릇을 많이 해보도록 권장해라. 어릴 적 골목대장이 커서도 큰 사람 된다. 대신 절대 애들 괴롭히거나 사람은 패지 않도록 단속 잘 하고.
시어머니 : 아버지 말씀이 맞다. 애들은 원래 때리고 맞고 하면서 커야 서로 존중을 배우는데, 지금 사회는 뭔가 잘못 되었어. 별 것 아닌 해프닝로도 걸핏 하면 열리는 학폭위가 대한민국 애들을 전부 망치고 있다. 어릴 때 가벼운 주먹질도 아예 못하도록 원천 봉쇄해서 단단히 틀어 막은 채로 크니까, 커서도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어른이 되어 버리는 거야. 어릴 때 어른들이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해 버리면, 세상의 기본적인 원리와 이치에 대해 모른 채로 성인이 되어 세상의 권력을 예전 세대로부터 넘겨받을 때가 되면 무슨 기상천외한 짓을 벌일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시대가 열리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아들 : 알겠습니다.
며느리 : 앞으로는 뭐든지 직접 경험해 보라고 하고, 엄마 아빠에게 자기가 경험해 본 것에 대해 감상을 알려달라고 말해보도록 유도할게요.
시어머니 : 그렇지! 그게 바로 부모의 올바른 훈육 자세란다. 너희들이 내 말 뜻을 잘 알아들었구나. 며늘아가, 갓김치랑 파김치 좋아한댔지? 여기, 이것도 같이 싸 가거라. 혹시나 김치 사먹을라 치면, 저기 어디냐, 해운대 재송동에 연옥김치인가? 거기가 전국에 택배 싸서 보내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전국구 김치 집이니까 거기서 주문해서 사다 먹어라. 유명하고 맛있는 데다.
시아버지 : 거기 저번에 산 탈 때 지나가면서 보니까 요새 집주인이 바뀌었는지 젊은 애들이 하던데? 대를 이어서 운영하나 보지요?
시어머니 : 글쎄요. 가업인 것 같긴 해요. 오래 된 집인데 젊은 애들이 운영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아마 원래 주인의 자식이나 제자들인 것 같네요.
아들 : 기억해 둘게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며느리 : 어머님, 아버님. 너무 정성들여 힘들게 준비하신 것 같아요... 제가 별로 도운 부분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절대 버리는 부분 없이 깨끗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감사히 잘 먹을게요.
시어머니 : 요번 김장에 쓰인 배추랑 고춧가루는 전부 내 언니가 손수 농사 지어서 직접 방앗간에 가서 빻아서 가지고 온 것이고, 품질보증 태양초다. 맛은 어떨지 몰라도 재료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이니까 믿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 : 와, 요새 배추도 금추고 고추도 금추인데, 올해는 완전 금덩이로 만든 귀한 김치를 다 먹게 생겼네요! 김치가 아니고 금치네요!
시어머니 : 그리고 며늘아기, 요 며칠 감기 때문에 한 달 내도록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고 아범한테 얘기 들었다. 내가 배 깝데기 다 벳기고 씨방 다 썰어 빼내고 느 시애비가 녹즙기에 즙 짜서 탕약 달이듯이 정성들여 달달 끓여 내린 배즙이다. 녹즙기로 걸렀으니 입에 걸리는 것도 없고 달달하니 주스처럼 맛있으니까, 이거 가져가서 따끈하게 데워 매일 아침 아기랑 한 잔씩 나누어 마시거라. 애 키우는 애미가 자꾸 아프면 되겠느냐? 독한 감기 떨구는 데 배즙만큼 약효 빠른 것이 없다. 생강이랑 섞어서 조금씩 챙겨 마셔라.
며느리 : 어머님...ㅠㅠ
아들 : 무슨 배를 한약 탕재 법제하듯이 손질해서 달이셨네요? 이거 어머니 혼자서 고생 다 하신 거 아닙니까? 원래 한약재 법제 과정은 손질이 80이고 달이는 게 20인데?
시어머니 : 그런 소리 마라. 느 아버지도 고생 많이 했데이. 녹즙기에 조금씩 살살 썰어 넣어야 하는데, 성미껏 콱콱 쑤셔 넣고 싶은 거 내한테 잔소리 안 들으려고 성질 죽이느라 얼마나 고생 많이 했는지 아느냐?
시아버지 : 고생은 무신, 느 어매는 배 껍딱 벳기고 씨 뺀다고 손가락에 물집이 세 개나 잡혔다. 어데 탕약집 즙 짜는 데서 그래 해주는 줄 아나? 즙쟁이는 껍데기고 씨고 나발이고 통째로 다 짜뿐다. 오로지 귀한 메느리 멕일라고 느 애미가 낼로 이래 고생을 시킸다. 이렇게라도 고생한 티를 내고 생색을 내야 느그가 조금이라도 고마운 줄로 알고 안부 전화라도 한 통 더 할 것 아이가.
아들 : 고맙습니다...
며느리 : 너무... 너무 고생하셨어요...
시어머니 : 나는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우리는 은쟈 어차피 곧 늙어 죽어질 몸이다. 둘이 티카타카 하면서 산에 들에 놀러댕기기 바쁜데 의학이 너무 발달하는 바람에 빨리 죽지도 못하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지루해 죽것다. 오로지 바라는 것은 느그들 몸 건강히 자식새끼 잘 키우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 지켜 보는 것 뿐이다.
시아버지 : 건강해라. 제발 좀 아프지 마라. 내가 몹쓸 피를 물리주가 아들내미도 골골대면서 내도록 아픈데, 왜 며느리도 병에 걸려서 빌빌거리면서 자꾸 아파쌓노. 약즙 한 잔 벌컥벌컥 묵고 싹 낫아라. 씩씩하게 좀 살아라.
아들 & 며느리 : ㅠ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안의 비상계엄,
12월의 어느 날
김장철의 김장날이 마무리 되었다.
시어머니 : 여보, 저거 청송에서 받은 사과도 좀 싸주고. 참! 애기 좋아하는 밀감도! 서귀포 꺼 있다 아이요! 하이고 마 싸는 김에 많이 좀 잔뜩 싸이소! 아끼다 똥 될끼요? 그게 머고? 싸는 김에 대봉감도! 쫌팽이같이 세 개가 머요? 더 싸주이소!
시아버지 : 아, 적당히 싸주야 할 것 아니오! 야는 허리가 아파서 많이 줘 봤자 더 못 들어요. (주섬주섬) 야야, 잠깐 기다리 봐라. 이건 거창 아재한테 받은 꿀인데, 설탕물 하나도 안 멕인 진또배기 아카시아 꿀이다. 아랑 며느리 기침 할 때 도라지랑 생강 빻은 것에 섞어 절이가 멕이그라. 그리고 이거 내 입던 자켓인데 니한테 맞을끼다. 고급 쎄무다. 가지 가그라. 이거 내 신던 신발인데 고급 구두다. 이 운동화도 비싼 건데 몇 번 안 신은기다. 가가라.
아들 : (...너무 무거워...)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
부모님께서 주신 김치와 선물을 잔뜩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내 : 내가 너무 애를 순하게만 키운 것일까요. 아이를 너무 양순하게 키우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요. 심란하네요...
남편 : 그 이야기를 아직까지 마음 깊이 담아두고 있었던 거예요?
아내 : 저는 솔직히... 충격이 컸어요. 그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면서, 강하게 비정상이라고 결론지어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어쩌면, 어머님 말씀대로 우리가 아이를 너무 억압하며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남편 : 어이구... 쌍팔년도 이전 어르신들 얘깁니다. 새겨 들을 부분은 새겨 듣고, 걸러 들을 부분은 걸러 들어요. 세상에 정답은 없어요. 시대가 변하면 진리라고 믿었던 가치관 또한 변합니다. 천성이 순하고 착하고 선하게 태어난 인간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내 자식이 폭력과 불화를 혐오하는, 이런 존재로 태어나 자랑스럽고 뿌듯할 뿐인데요?
아내 : 저는 솔직히 시부모님들의 말씀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특히 시아버님은 교육자이시잖아요. 평생 수많은 아이들을 보살피며 가르쳐 오셨고, 우리가 미처 캐치하지 못하는 것을 잡아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실 거예요. 아이는 강하고 줏대있게 키워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 속에 가시처럼 박혀 들어와요. 아버님의 말씀대로,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확립한 뒤, '창의력과 자주성을 바탕으로 남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 : 윤석열은 어떤 인간이에요?
아내 : 지금은 우리 아이 육아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걸 또 정치 얘기로 끌고 갈 작정이에요?
남편 : 그냥 대답해 봐요. 당신이 보기에, 윤석열은 어떤 인간이에요?
아내 :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안하무인의 고주망태 불도저 같은 소통 불가 망상병자죠.
남편 : 나치 시절 독일인들은 어떤 인간이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았고, 가장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들, 가장 높은 고등 교육률로 가장 많은 대학 졸업자들과 학위 수여자들을 배출했고, 수없이 많은 위업을 이룩한 과학자, 공학자들을 배출한, 명실공히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과연 그들은 창의력이 부족했을까요?
아내 : 그...렇진 않았겠지요. 분명히 그들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선도했고,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상으로 빛나는 존재들이었어요.
남편 : 그럼 그렇게 위대했던 이성과 지성의 소유자였던 독일인들을 나치 파시즘의 광기로 타락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히틀러라는 광인의 말빨에 홀라당 속았다고 단순하게 변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아요. 불과 8년 전에 국정농단 중전마마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최순실을 잡아넣은 위대한 민주주의의 상아탑 한국인들이,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역대 최다 득표율로 무지성 2찍 러시를 벌여 윤석열을 당선시켜 놓고, 이제 와서 이런 정신 나간 비상계엄 사태를 마주하고서야 최면에서 깨어난 듯 탄핵의 깃발을 휘두르고 있어요.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내 : 한국인들이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거?
남편 : 아니에요. 내 말의 요지는, 아돌프 히틀러를 배출한 독일인들과 윤석열 같은 인간을 낳은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에, '인간다운 감정'을 교육하는 부분이 부재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과거 독일 교육과 현대 한국 교육의 중요한 공통점이에요.
아내 : 그 말은, '감정' 그 자체를 교육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남편 : 맞아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주로 '이성'과 '합리'를 추구하지요. 철학과 예술과 문과를 전공하면 굶어죽기 딱 좋은 시대가 도래한지 40년이 넘었고, 우리는 인터넷 세대에 등장한 '오글거린다'라는 다섯 글자에 의해 문학 예술 전체를 거세당했어요. 감정에 휘둘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며 울고 웃는 자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슬프거나 웃긴 것을 봐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라며 쎈 척을 하고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은 따봉과 좋아요를 받는 세상이 되었어요.
아내 : 지금 당신의 그 발언은 학교 교육 과정에 '감정'이라는 과목을 추가해야 한다는 발상처럼 들리는데요.
남편 : 정확해요. 현대인들은 '인간이 최소한 가져야 할 감정',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빠른 속도로 잃어버리고 있어요. 단언컨대 윤석열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예요. 그리고 이것은 윤석열 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건 과거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 내에서 그가 인간적인 감정과 감수성을 보유하지 못한, 인간성을 상실한 비정상 상태였음을 충분히 미리 인지할 수 있었다면, 혹여라도 인간다운 감정을 교육하고 가르쳐서 심어줄 수 있었거나, 정 안된다면 최소한 고위 공직자에 오르지 못하도록 걸러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거예요. 내가 주먹으로 맞으면 아프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주먹으로 때리면 그 또한 아플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자란 것이죠. 주인공의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하면 너무나 깊이 사랑한 사람을 처절하게 잃는 슬픔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후유증 심하게 남는 문학 작품들, 심신의 안정을 해칠 정도로 괴롭고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그런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 이런 것들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아내 : 내가 직접 겪지 않아도 될 상황에 대신 놓여 보는 간접 경험으로 타인의 감정을 대신 느껴보기 위해서 일까요?
남편 : 정답이에요.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예술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 가치예요. 사람은 언제나 기계가 되기를 원해요. 사람은 언제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싶어 해요. 가차없이 인간성을 버리고, 기계의 부품이 되고 싶어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뇌 빼고 노동을 하고, TV 예능방송이나 드라마에 울고 웃고 사유하는 행위 자체를 놓아버리고 싶어하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 이건 인간의 본성이에요. 두뇌 활동은 체내 장기 활동 중 가장 많은 칼로리를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니까,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심각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 한 뇌내 활동량을 줄일 수만 있다면 무조건 편하게 뇌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거든요.
아내 : 맞아... 릴스랑 쇼츠 보는 건 마음이 한없이 편한데, 뭐 하나 사려고 쇼핑하고 가격 비교하고 품질 따지는 건 정말 스트레스 받는 일이야...
남편 : 국가란, 군대란, 경찰이란, 회사란, 세상 모든 조직이란, 결국 그 본질은 보이지도 않는 허황된 '질서'와 '명예', '규칙'을 통해 '폭력'을 관리하는 집단입니다. 내가 전에 얘기해 준 적 있지요? 태어나서 한 번도 싸움이나 말다툼 조차도 해본 적 없지만 해병대 가서 폭력적인 악기바리 무적 해병이 돼서 돌아온 순둥이 친구 얘기.
아내 : 네 ㅋㅋ 그 친구 얘기 몇 번이나 했지요.
남편 : 내 친척 동생 중 하나도, 거의 반푼이나 다름 없는 약간 덜 떨어진 바보같은 아이가 하나 있는데, 멀쩡하게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어요. 그 녀석은 어렸을 적, 애지중지 키우던 벌레 하나가 죽어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순박한 시골 소년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녀석이 지금은 대대원들에게 존경받으며 훌륭하게 장교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내 : 허...
남편 : 그 뿐인가요? 다른 먼 친척 동생 하나는 어릴 때 주먹질을 너무 많이 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길 짐승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고 해부학 공부랍시고 장기를 해체해 표본을 만들기도 해서 부모마저도 소름끼쳐 해서 집에서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하고 살았는데, 크고 나서는 폭력은 커녕 개미나 바퀴벌레 한 마리도 무서워서 못 잡는 쫄보가 되어버렸어요.
아내 : 헐; 사람 성격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남편 : 우리 아이에 대한 유치원 원장의 평가는 어때요?
아내 : 원장 선생님은... 우리 애가 산만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걱정이래요. 저더러 가정교육에 신경을 좀 많이 써달라고 우려를 표했어요.
남편 : 담임 선생은요?
아내 : 담임 선생님은 수업 태도가 너무너무 좋고 항상 참여율이 너무 좋아서 터치할 부분이 없대요. 수업 진도도 제일 빠르구요.
남편 : 영어 선생은요?
아내 : 중학생 수준이라서 무슨 선행학습을 어떻게 했냐고 다른 엄마들이 제 번호를 물어본다고 학부모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진땀을 뺀대요. 아...!
남편 : 그럼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에요?
아내 : 이거... 일종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예요? 어른들이 각자 우리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자신만의 잣대로 전체를 다 파악한 양 잘난 척 훈계하려 한 것인 걸까요?
남편 :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태어날 때부터 항상 함께 있었던, 부모인 우리예요. 그리고 우리보다 우리 아이를 더 잘 아는 건 우리 아이 자기 자신 뿐이겠지요. 만약 부모인 우리가 자식을 믿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내 : ...
남편 : 나는 폭력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친구들의 싸움을 중재하고, 놀이를 주도하고, 공부를 좋아하고, 책과 상상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빠가 들려주는 신기한 세상 만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그런 우리 아이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우리 아이도 그런 스스로와 자신의 삶을 너무 좋아한대요. 엄마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항상 말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말할 것도 없지요.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고 싶은 것인가요?
아내 : 여보, 사랑해요.
남편 : 왐마 씨, 운전 중에 놀라그로 뜬금없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사고 납니다?
아내 : 난 정말 현명한 남편을 둔 것 같아요. 내 복이야. 정말 고마워요. 난 참 결혼을 잘 한 것 같아.
남편 : 나야말로 고맙습니다. 내 지랄맞은 유전자를 눌러주고 저런 순박한 아이를 낳은 건 당신의 차분한 핏줄 덕분이야. 나는 우리 아이같은 보물을 나한테 선물해 준 당신한테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밤이다.
덤으로 김치도.
난 13억 인구도 먹여 살리는데, 당신은 고작 2천만도 굶겨 죽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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