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대 성씨별 각 가문의 문장, 종문의 문양과 시조
김해 김씨(金海 金氏) 가문의 문장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
김해 김씨는 대가락(大駕洛)국을 건국한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합니다.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는 후대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김해 김씨는 신라를 건국한 밀양 박씨를 비롯한 왕족, 귀족과의 혼인으로 고려시대까지 천년동안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여겨지며 존숭 받아왔습니다.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며 걸출한 재상과 수많은 과거급제자, 정승을 배출하였지만, 조선의 역성혁명 건국을 반대한 고려 충신들이 많아 조선시대 내내 많은 탄압을 받았고 크게 쇠락하였습니다.
양천 허씨 가문의 문장
양천 허씨, 태인 허씨, 하양 허씨, 김해 허씨의 시조 허황옥(許黃玉)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許黃玉)은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Ayodhya, 아요디아)에서 배를 타고 삼한 땅으로 와 정착하였으며, 189년까지 무려 158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신화적 인물입니다.
슈리라트나(힌디어: सुरीरत्न), 심바발람(타밀어: சீம்பவலம்)이라고도 불리며 10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허황옥 황후는 김해 김씨를 세습한 첫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의 이름을 허씨로 정하기를 바랐는데, 김수로왕이 그 뜻을 따라 나머지 자식들이 각각 양천 허씨, 태인 허씨, 하양 허씨,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허씨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시조가 여성인 성씨입니다.
밀양 박씨(密陽 朴氏) 가문의 문장
밀양 박씨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밀양 박씨는 진한 서라벌을 기반으로 신라의 모태가 되는 사로국을 건국한 박혁거세 거서간(朴赫居世 居西干)을 원시조로 합니다.
가문의 시조는 신라의 제54대 국왕 경명왕(景明王)의 장남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으로부터 세대를 헤아립니다.
밀성 박씨(密城 朴氏)라고도 부르며 조선시대를 통틀어 수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의 문장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은 통일신라 말기 사공(司空) 벼슬을 역임한 사람으로, 이한의 선대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사료나 기록이 없습니다. 시조 이한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며, 1771년(영조 47년) 시조 발상지인 전주에 조경묘가 창건되었습니다.
경주 김씨(慶州 金氏) 가문의 문장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
경주 김씨의 시조는 신라의 추존왕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 65년 3월~?)입니다.
계림 김씨 또는 신라 김씨라고도 부르며, 신라 왕실의 삼성인 김씨, 박씨, 석씨 중 하나입니다.
조선의 16대 왕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는 자신의 약점이었던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신화를 많이 끌어다 썼는데, 그 정통성 강화 사업 중 하나가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그리게 한 금궤도입니다.
사로국은 65년(탈해왕 9) 시림에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탄생하였기에 국호를 계림으로 삼았다가, 307년(기림왕 10)에 국호를 신라로 변경하였습니다.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 거서간 1년)에 처음 창건되어 서라벌, 사로, 사라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김알지의 재위 이후 약 140년간 계림국이었으나 신라국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935년(경순왕 9년)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습니다.
고려의 존속 기간인 474년과 조선의 존속 기간인 518년을 더하면 992가 나오는데 이는 고려와 조선의 전신인 신라의 존속 기간인 992년과 같은 기간입니다.
전 세계 역사에서 천년을 지속해 온 국가, 천년 왕국을 꼽자면 로마 제국과 신라 두 국가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로마는 정치 집단이 분열되어 정통성을 잃어버리고 쪼개어졌기 때문에 단일 정치체제를 약 천년 간 유지해 온 국가는 신라가 인류 역사상 유일한 국가입니다.
경주 이씨(慶州 李氏) 가문의 문장
경주 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
경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로(斯盧)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부 세력 사로 6촌은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고조선 유민으로서, 진한으로 남하하여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69년, 사로 6촌장이 알천의 둑 위에 모여 나라를 세울 것을 논하였는데, 마침 남쪽 양산 밑의 나정에서 황금 알에서 깨어난 혁거세 거서간을 발견하여 왕으로 삼기로 하고 함께 양육하여 기원전 57년에 왕위에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양산촌은 유리왕 9년(서기32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되었고, 이씨(李氏) 성을 사성(賜姓)받아 경주 이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경주 이씨 세전보감에 따르면 이알평은 기원전 117년에 하늘에서 진한 땅 표암봉으로 내려온 것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진주 강씨(晉州姜氏) 가문의 문장
진주 강씨의 시조,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
진주 강씨(晉州姜氏)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합니다.
강이식 장군은 제(齊)나라 국성 천수 강씨(天水 姜氏)의 지파인 광동 강씨(廣東 姜氏)의 일족이자 대륙에서 이주하여 고구려 말 평양성에 정착한 사람으로, 봉신연의로 유명한 제나라의 시조 태공망(太公望) 강자아(姜子牙), 소열무성왕(昭烈武成王) 강태공(姜太公)의 자손입니다.
제나라는 대대로 주나라의 장인이자 천하의 스승국으로 군림하였고, 강씨의 후손들은 수많은 지파를 만들며 퍼져나갔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 871-1에 강이식 장군을 모신 진주 봉산사가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제향합니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 가문의 문장
경주 최씨의 중시조 최치원(崔致遠)
경주 최씨의 중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사로(斯盧)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촌장(村長)이었던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이며 신라의 6두품 출신 학자입니다.
최치원은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고 귀국하는데, 신라 진골귀족 중심의 신분체제의 한계를 깨닫고 890년 스스로 외직(外職)으로 나가 태수(太守)를 역임하였습니다.
894년에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時務十條)를 올려 개혁을 제시했고, 6두품으로서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阿飡)에 올랐습니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가문의 문장
광산 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
광산 김씨의 원시조는 경주 김씨의 원시조와 같은 김알지이며, 김알지의 후손이자 광산 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고, 《광산김씨 정유대동보》, 《신라김씨선원보》, 《계림대보》, 《경주김씨보》 등에는 신라 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 그 족보가 불분명합니다.
이후 김길(金吉)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자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위치한 광산 김씨 유허비는 높이 249cm의 비석으로 광산 김씨의 본관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유허비 전면에는 '신라왕자유허비(新羅王子遺墟碑)'라 쓰여있고, 오른쪽에는 유허비명(遺墟碑銘) 제하 119자의 글, 왼쪽에는 비를 세우는 일에 참여한 4명의 이름과 관직 등 26자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김진상(金鎭商)이 쓴 '유허비음기'라는 제목 하에 180자의 내용과 23자의 세운 시기와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파평 윤씨(坡平尹氏) 가문의 문장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이 되었으며, 벽상삼한익찬2등공신(壁上三韓翊贊二等功臣)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직 까지 오릅니다.
시조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坡平山)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겨드랑이 아래 81개의 잉어비늘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파평 윤씨의 중시조로는 윤신달의 5세손이자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은 윤관(尹瓘) 장군이 있는데, 윤관 장군 또한 거란과 싸우던 중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쫓겨 강가에 이르자 잉어들이 다리를 만들어주어 무사히 탈출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시조 윤신달의 탄생설화와 중시조 윤관 장군이 입은 은혜를 기리기 위해 파평 윤씨는 대대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전해집니다.
청주 한씨(淸州韓氏) 가문의 문장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韓蘭)
《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마한 9대 원왕(元王)의 세 아들 우평(友平), 우량(友諒), 우성(友誠)이 각각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 청주 한씨(淸州 韓氏), 행주 기씨(幸州 奇氏)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 太尉) 한란(韓蘭)을 시조로 삼습니다.
한짤로 보는 조선시대 설탕이 귀했던 이유.jpg
삼성 갤럭시 S23 울트라로 100배 줌,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 모습
티모시 샤르르 샤랄라 샬라메 영화 '웡카' 이동진 평론가 평점
삼성 갤럭시 핸드폰에서 기본으로 지원하는 8가지 자판 형태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상을 닮은 연예인과 유명인들, 피는 못 속인다, 씨도둑은 못한다! (90) | 2024.01.25 |
---|---|
김해 김씨 남자들의 비밀, 시조 김수로왕의 전설 (61) | 2024.01.24 |
직계 존속과 직계 비속의 차이점, 뜻과 의미 (65) | 2024.01.22 |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명나라 장수들의 평가 (116) | 2024.01.21 |
1597년 당시 1년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벌어진 일들 요약 (84)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