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량의 측량 기준이 남들과 조금 다른 김준현.jpg
어느 부부의 대화
아내 : 여보, 당신도 예전에 밥을 엄청 많이 먹었었잖아요. 최고로 많이 먹었을 때는 한 끼에 얼마나 먹었어요?
남편 : 삼겹살 18인분에 된장찌개 6그릇, 공기밥 8그릇이요. 20대 초반에요. 사흘간 공연하고 난 마지막 날, 주최 측에서 공연팀한테 돈은 자기들이 낼 테니, 무료니까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으라고 회식을 열어줬는데, 주연이었던 나한테만 따로 수고했다고 독상 받고 퍼먹은 날이었어요. 내가 너무 많이 먹고 있으니까,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공짜니까 아까워서 억지로 먹는다고 생각했던지, 한 5~6인분 쯤 먹고 있었을 때였나? 선배 한 명이 '아무리 공짜 밥이라지만 억지로 먹어 제끼는 건 몸에 독이 된단다.'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 말 이후로도 십인분을 더 퍼먹고 된장찌개 네 그릇을 더 시켜 먹으니 할 말을 잃더군요. 그 공연 때 3일 만에 4kg가 빠졌었어요. 그 한 끼 식사로 4kg, 충분히 보충되지 않았을까요?
아내 : 당신이 사람이에요? 그 정도면 코끼리나 소 아니에요? 간이랑 췌장이랑 다 박살 나겠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남편 : 아뇨? 정 반대예요. 나는 먹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 하고 싫어했어요. 어릴 적부터 식사가 하도 귀찮고 싫어서 알약 하나로 식사 대체하는 발명품 개발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 걸요.
아내 : 역시.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찔래야 찔 수가 없어. 근데 먹는 걸 싫어한다 했으면서 왜 그렇게 아귀같이 악착같이 퍼먹은 거예요? 무슨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요?
남편 : 글쎄요? 칼로리가 모자라서? 그만큼 체력을 미친 듯이 많이 쓰기도 했고.
아내 :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데. 진짜 그렇게 많이 먹었다구요? 근데 왜 살이 안 찜?
남편 : 난 평생 뼈말라였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평생 70kg을 넘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을 만났을 때가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을 때였는데, 그때가 75kg이었지요.
아내 : 난 당신이 덩치도 좀 있고, 어깨도 넓직한 게 무게감이 좀 있어 보이는 것이 듬직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어떻게 사귀기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15kg이 홀쭉 다 빠져버리나요. 게다가 먹는 걸 적게 먹지도 않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 넓던 어깨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깽이로 변해가는데, 완전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
남편 : 그때는 운동을 많이 했으니까요. 난 매일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허공에 주먹질, 허공에 발차기, 각각 백번씩 매일 빠짐없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 : 대체 왜요?
남편 : 한마 바키라는 만화책 보고 감명받아서요. 타암(打岩)! 끊임없는 육체의 단련과 수련은 남자의 로망!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아내 : 아, 뭐, 그건 내가 모르는 세계의 얘기니까 됐고... 음식 종목을 다른 걸로 바꿔도 그랬어요?
남편 : 라면은 무조건 한 번에 4개들이 5개들이 6개들이 큐팩 단위로 먹었고, 계란도 까넣고 밥도 말아 먹었지요. 비빔면도 다섯 개씩. 회전 초밥으로는 50접시 정도. 친구랑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쫓겨나 본 적도 있고. 시골 마을 잔칫날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찰부깨미 두 광주리를 혼자 다 먹은 적도 있어요. 매 끼니 그 정도 양으로 하루에 다섯 끼, 여섯 끼 씩 먹었어요.
아내 : 씨름 선수임? 유도 선수임? 원래 남자들은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거예요?
남편 : 여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찌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여성의 몸은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니까? 기본적으로 남자에 비해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아내 : 나는 그렇게 많이 먹는다는 말만 들어도 속이 불편한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 먹부심이 좀 있었죠?
남편 : 없었다고는 못하겠죠? '사나이는 어찌 되었든 많이 먹고 위장을 키워놔 버릇 해야 된다'는 소릴 들으며 자랐으니까? 지금에야 뭐...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복스럽게 잘 먹어야 장하다'라는 소리를 들었잖아요.
아내 : 나는 식탐이 많아요. 마음 같아선 집채만 한 생크림 케이크를 눈앞에 쌓아놓고 양손으로 와구와구 퍼먹고 싶어요. 그런데 정작 먹기 시작하면 두 포크를 마저 채 씹어 삼키기도 전에 '어? 배가 다 찼는데? 벌써 질리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버려요. 그래서 난 항상 입맛이 없어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한 두 달 전부터 욕구가 올라와서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꾹꾹 억누르다 식욕 폭발해서 눈앞에 딱 대령을 해서 '와! 드디어 먹는구나!' 하는 감격과 함께 숟가락을 뜨는 순간, 순식간에 질려버리고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이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져 버려요. 대체 난 왜 이런 걸까요? 평생을 위통과 위경련, 배앓이와 소화불량에 시달려 왔어요. 조금만 거친 음식을 먹어도, 정해져 있는 내 위장의 기준량을 아주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아... 조금 쎄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내에 고통스러운 위경련이 시작됐어요. 우리 연애하던 시절, 당신이 손가락을 칼날처럼 빳빳하게 세워 내 뱃속 갈비뼈 사이를 밑에서 위쪽으로 파고들어 경련이 일어난 내 위장을 직접 마사지 해서 몇 번 풀어내 치료해 준 이후로 위경련이 또 일어나는 일은 없었지만, 난 항상 '많이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있어서 많이 먹지도 못할 뿐더러, 입맛도 별로 없고 금방 질려 버려요. 왜 난 항상 맛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남편 : 당신은 평생 몸무게가 1kg도 변한 적이 없다고 했죠?
아내 : 네. 중학교 2학년 때의 몸무게가 지금 몸무게예요. 49kg. 평생 그대로, 단 한 번도, 단 1kg도 변해본 적이 없어요. 식사량도 평생 그대로, 변해본 적이 없어요.
남편 : 난 몸무게가 56kg 까지도 빠져봤고, 69kg까지도 쪄봤고, 평생토록 완전 들쭉날쭉 했어요. 조금 많이 먹었다 싶은 시기에는 확 7~8kg 쯤 쪘다가, 좀 덜 먹었다 싶은 시기에는 또 확 5~6kg 쯤 빠지고.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봤자 이렇게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보단, 당신처럼 소식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일정한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훨씬 건강한 삶 아닐까요?
아내 :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 먹는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남편 :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데요?
아내 : 그게 없어요. 나는 좋아하는 음식이 없어요! '아, 이거 먹고 싶다!' 하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그런 음식이 없다구요! 나는 당신이 소고기 스테이크를 씹을 때마다 혀와 목을 흘러내리는 육즙에 황홀해 하며 '아, 너무 맛있다!' 하는 감탄을 내뱉을 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너무 부러움을 느껴요. 나한테는, 그런 '소울 푸드'가 없어요!
남편 : 있는데. 내가 다 써놨는데.
아내 : 그게 뭐죠?
남편 : 황태 미역국. 비빔 밀면. 들깨 칼국수. 홀 그레인 머스터드 소스에 무친 볶은 당근 라페. 생 굴. 버섯. 미역귀. 생 다시마 쌈. 스타벅스 뉴욕 치즈케이크.
아내 : ...뭐야?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그것들을 어떻게 다 기억해요?
남편 : (천진난만) 이거 전부 다 내가 싫어하고 입에도 안 대는 음식들이라서요. 어딘가 적어서라도 기억해두지 않으면 절대로 내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을 음식이니까요. 나는 싫어하지만, 당신은 좋아하는 음식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놔야 안 까먹고 사주지요. 나는 초딩 입맛이거든요. 나는 그저 생고기! 생 풀! 동그랑 땡!
아내 : 그...래요... 장하다... 우리 남편...
남편 : (뿌듯) 칭찬이죠?
아내 : (피 토함) 그래도 당신 식사량이 많이 줄어서 균형이 맞으니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우리 둘이 식당에서 2인분을 시키면 양이 딱 맞잖아요? 내가 0.5인분, 당신이 1.5인분.
남편 : ㅎㅎ 그렇죠. 그 정도만 먹어도 양이 충분히 차는 게 신기하긴 하네요. 예전 같으면 나, 배가 덜 차서 계속 신경질 났을 텐데. 먹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니, 진짜로 줄어 든다는 게 놀라워요.
아내 : 근데 왜 당신 요즘 식스팩 없어졌어요?
남편 : 살이 너무 많이 쪄서 그래요.
아내 : ?? 한 끼에 최소 2인분 이상 먹었고, 하루 삼시 세끼 이상을 먹었던 그 시절에도 안 찌던 살이 쪘다구요? 당신 요즘 하루종일 밥도 거의 안 먹고 커피나 홍차, 자스민 차, 장미 차 밖에 안 마시지 않아요? 얼마나 쪘는데요?
남편 : 한 10kg 넘게 쪘었나? 지금 한 80kg 까지 찍었다가 5kg 정도 빼서 75kg 정도로 내려왔을 걸요.
아내 : 당신이 무슨 할리우드 배우예요? 메소드 연기라도 해요? 뭔 놈의 체중이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변해요?
남편 : 부상으로 몸을 심하게 다쳐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못하니 어쩔 수 없었어요. 게다가 한 번 게을러지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이 게을러져서, 일에 관련된 것 이외엔 운동을 거의 안 하게 되니 하루에 한 끼밖에 안 먹는데도 살이 찌네요. 식사량만 따지고 보면 예전 식사량의 10분의 1도 채 안 먹는데, 운동량만 놓고 보자면 예전에는 하루 최소 8천보 이상은 걸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3천보가 뭐야, 8백보도 채 못 걷는 날도 제법 있어요.
아내 : 재활치료를 할 때에는 운동에 제대로 신경을 써야죠. 아파서 고생해 본 적 있다는 사람이 운동을 게을리 하면 어떡해요?
남편 : 변명할 말이 없네요.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할게요.
아내 : 이 돼지! 뚱뚱보! 꿀꿀이! 이 뱃살 다 어쩔 거야! 이거 다 나잇살이야! 충격 요법이다! 운동을 해라! 요 꿀꿀 돼지야!
남편 : 세상에 이렇게 날씬한 돼지가 어딨어요! 내 몸무게 정도면 내 키에 비해 보기 좋게 BMI 수치도 딱 정상 수치인 적정 체중이에요! 내 나이 또래 동년배 친구들 전부 한뚜껑 한가발이 마냥 뚜껑 다 날라가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고 배불뚝이에 뒷 범퍼 뛰뛰빵빵 돼서 윤석열 대통령 비스무리하게 생겼구만! 사나이는 나이 들면 다 뚜껑 싸움이라는 소리 못 들어봤어요? 난 적어도 풍성충이에요!
아내 : 생각해 보니 내가 말이 너무 심했군요. 내 친구 남편들을 가만 떠올려 보면 당신은 상대적으로 제법 동안이고 준수한 편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가능하면 식스팩은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도록 하세요. 만에 하나 세탁기가 고장나도 손빨래는 해야 하니까요. 남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관리 안 하면 삽시간에 폭삭 할아방구 영감탱이 되는 거 시간 문제라구요.
남편 : 운동 열심히 할게요. 걱정 마요. 난 한 때 근육 빵빵 헬창이었던 사람이라 아직 머슬 메모리가 남아있을 것이고, 애초에 기초 대사량도 높아서 살 잘 빠지는 체질이라, 빼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빼요. 다이어트 힘들다는 거, 나한테는 해당 안되는 말이에요. 대신 같이 운동 파트너나 좀 해줘요. 캔맥주 좋아하는 당신, 그러다 통풍 옵니다. (술 끊은 자)
아내 : (젠장, 얘기가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결론 : 운동량이 지나치게 줄면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먹고
커피만 마시면서 1일 1식을 해도 살이 찐다.
무려 10kg 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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